꽃샘 추위로 땅이 다시 얼어 겨울로 돌아선 듯한 날씨에
연화봉 천지에는 못을 다시 막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화봉 천지는 영천의 보현산에서 발원한 지맥이 이어져오다가, 안동시 길안면 황학산에서 몸을 한번 일으키고 안동시내 쪽으로 흘러오면서, 임하면 고곡리 대성사 앞에서 영기가 서린 봉우리에 생긴 자연의 못입니다.
이 곳은 안동포마을로 유명한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일대의 醴泉 林씨 소유의 선산으로,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곳입니다. 산소는 산 정상부로 동남을 향해 있으며, 약50미터 뒤편에 움푹하게 패인 곳에 천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화산으로 생성된 분화구에는 백두산 천지가 있고, 한라산 백록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울릉도 성인봉 아래에 있는 나리분지에는 물 한 방울 고인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산상에 천연적인 못이 있는 곳은 이곳이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못이 형성된다면 아마 한국의 삼대천지가 될 것입니다.
눈짐작으로 250~300평 정도되는 논바닥처럼 평평한 고산습지이지만 물이 가득차면 우리나라의 삼대천지가 될 것입니다.
갑자기 추운 날씨로 땅이 얼어 바닥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오늘 이 천지의 못 둑을 새롭게 막는 까닭을 설명하겠습니다. 예천임씨의 금소리 入鄕祖는 4대를 내리 독자로 살아오면서(자신을 포함하여 5대, 아들까지 6대)그야말로 四顧無親의 외로운 신세였습니다.
그것이 한이 되어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가지가 무성한 나무처럼 되라고 가지枝자에 날生자로 지었지요.
그래서 이름 덕을 보았는지 손자는 둘이 태어났습니다.
맏손자 준방은 심성이 어질고 지혜로웠다고 합니다. 大飢饉을 만나 초근목피로 연명을 할 때 자신의 곳간을 헐어 큰 가마솥에 죽을 쑤어 지나가는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배고파 죽어가는 이웃을 살렸다고 합니다. 당시 정쟁으로 오랜 귀양살이 끝에 초췌하고 궁핍한 경세가이며 대학자인 갈암 이현일선생을 후대하고 정중히 마을로 모셔서,삼형제를 훌륭히 교육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이라 했던가요? 바로 이 분의 신후지지가 연화봉 정상의 산소입니다.
화심에는 돌을 놓으면 안된다는 풍수설에 따라 봉분 앞에는 일체의 석물을 놓지 않았습니다.
천지에 연꽃이 있다고 연화봉이라고도 했겠지만 산소자리가 풍수설로 연꽃의 화심에 해당한다고 연화봉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 이 명당자리에 누우신 어른의 아랫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손자가 12명 증손자17명 고손자28명 5대손40명입니다. 불과 몇 세대만에 혈혈단신의 외롭던 집이 대문호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자손번창을 발원하던 입향조의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요?
이름을 잘 지어 이름 덕을 본 걸까요?
생전에 쌓은 공덕이 餘蔭으로 나타난 걸까요?
명산에 터를 잡은 묘소의 발복일까요?
이 모두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요? 젊은 청년의 죽음이 발생합니다.
감기만 들어도 묻던 시절에 여기저기에 알아 본 결과 선대의 산소 뒤편에 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자손들의 일치된 견해로 드디어 이 신령한 천지의 가장 낮은 쪽을 파고 못을 터뜨립니다.
갑자기 폭포수가 골자기를 덮치고 연꽃이 떠내려가고 고기가 쓸려 내려갑니다. 지금도 이 개울을 연화거랑 또는 연어거랑이라고 하지요.
후손 중에는 자연의 못을 터뜨린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못되는 것을 조상의 묘소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그렇고, 또 묘소와 연관된다면 좋은 영기도 같이 빠져 나갔을 것이란 것이지요.
길흉화복을 떠나서 이제는 다른 다각도의 고려가 결국 천지를 복원하는 것으로 중의가 모아져 오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터뜨릴 때가 역사적인 한 사건이라면 오늘의 복원도 또한 뒷날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선조와 산신에게 고유한 제물을 음복하고 있습니다.
천지 가득한 물위로 연꽃이 피어나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신령스런 장소에 해마다 성묘를 오게 되는 그날을 그려봅니다 |